1막 사람은 언제부터 그림을 그렸을까


제2장

지난 글의 질문1 : 사람은 언제부터 그림을 그렸을까? 에 관한 두번째 대답, 기억하고 있는가? 앞서 그래피티가 어느 시대에 어떻게 시작이 되었는지 이야기했으니 이번에는 사람이 어느 시기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지 생각해보자. , 아들, 동생, 조카, 혹은 주변에 아이가 있는 집 안의 벽지를 보면 거의 공통적으로 크레용으로 그려진 무언가를 볼 수 있다. 대체로 사람은 태어나서 무엇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입에 넣고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시기를 지나 만 1세에서 2(경우에 따라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가 되면 바닥이나 벽지 등 여기저기 가리지 않고 글자인지 그림인지 도형인지 알 수 없는 모양새를 갖고 있는 낙서를 하게 된다. 35000년 전의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유아기의 아이가 그러는 것처럼 우리 몸 어딘가에 내재해있는 본능에 그림을 그리다라는 것이 속해 있는 것은 아닐까?

흔히 그림을 그리는 재능이 없다거나 소질이 부족해서 그림을 못 그린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2장과 마찬가지로 사람은 본능적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렇다면 재능이 없다든지 타고난 소질이 부족하다든지 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내 글과는 상반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러면 대체 그런 재능 및 소질이 부족하다는 판단은 어디서 생겨난 것이고, 그 재능과 소질이라고 부르는 그것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능으로서의 그림과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유아기의 그림은 그 의미도 불분명하지만, 사람의 발달과정에 있어 나와 남이라는 개념이 인지되기 전이기 때문에 다른 그림과 비교를 한다거나 그 비교의 결과로 자신을 평가하는 일도 없다. 소질이 부족해서 그림을 못 그린다고 말을 하는 사람에게 언제 자신이 소질이 없다고 느꼈는지 질문을 던져보면, 대체로 예전에 자기가 그린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라는 대답이 돌아오고, 다시 자신의 그림이 왜 마음에 안 드는지 생각해 보았는가 물어보면, 결국 또래의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의 그림에 비해 못 그렸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듣는다. 물론 때로는 비교하고 평가할 필요도 있지만 대체로 그것은 학교에서 점수를 매겨 순위를 정하기 위한 것일 뿐 그림의 완성도를 높이고 표현을 더욱 다양하게 하기 위한, 다시 말해 더욱 나은 다음 그림을 위한 비교평가라고는 보기 힘들다. 학교에서의 채점이 원래 가진 목적은 발전을 위한 분석이 맞긴 하겠지만, 정작 돌아오는 것이 숫자만 나열되어있는 성적표라면 누구라도 당장 결과적인 순위와 점수에 먼저 주목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너무 비약적인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피카소의 그림을 잠시(그의 그림은 명작이므로 그를 알지 못해도 시간을 들여 오랫동안 보면 무언가를 느낄 수도 있다) 보여주며 잘 그렸는가 라고 물어보고 점수를 주라고 하면 잘 그렸다는 대답이나 후한 점수를 기대하기는 힘들겠지. 결국 그림에 대한 재능 혹은 소질이라는 것이 진정한 자기 성찰과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기 주변 혹은 다른 작가의 그림에 비해, 그리고 성적표에 쓰여진 숫자에 근거해 평가절하된 것은 아닌지, 인터넷이나 다른 대중매체에 숱하게 돌아다니는 이미지에 눈은 높아질 대로 높아질 수 밖에 없는데 정작 자신이 손으로 그려낸 그림이 마음에 들 리 없고, 그것을 시간이나 노력의 부족으로 표현하기 보다는 재능과 소질이라는 말로 방패 삼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물론 재능이 있다면 좀 더 빨리 시작할 수는 있겠지만, 목적이나 방향감각 없는 재능은 무의미할 뿐이다. 그렇다면 왜 나는 잘 안 되는가?라고 묻는다면, 예술창조는 힘든 것이니까!라고 밖에 대답해줄 수 없다.[1]

다르게 생각하면 1, 2살 때야말로 진정한 작가로서 다른 사람의 시선에는 아무런 상관없이 자기 자신 그대로 그림과 이야기를 나누며 즐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1] 데이비드 베일즈, 테드 올랜드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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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 사람은 언제부터 그림을 그렸을까


1


질문1 : 사람은 언제부터 그림을 그렸을까? , 이제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아주 오랜 옛날 원시시대부터? 혹은, 1세부터 2세 사이? 질문이 부정확한가? 사람에 따라서, 처한 상황이나 때에 따라서 대답이 달라지겠지만 질문이 시기를 묻는 것인지 시대를 묻는 것인지 둘 중의 하나로 판단할 경우 대답은 앞서 말한 것 중 하나로 생각된다.

사실 앞서의 질문은 시기와 시대 둘 모두를 묻고 싶은 것으로 우선 시대를 생각해보자.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나 스페인 알타미라의 동굴벽화 그리고, 우리나라 반구대 암각화 등으로 미루어보면 대략 35000년 전 쯤부터 10000년 전 쯤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사람은 짧게 잡는다고 해도 10000년 이상 그림을 그려온 셈이다. 그런데 왜 이런 국사, 세계사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쓰고 있는가 하면 그래피티(Graffiti)라는 말이 바로 그 동굴의 벽화나 암각화를 지칭하는 말에서 유래했기 때문으로 이탈리아어 graffito[1] 혹는, 그리스어 sgraffito[2]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으며, graffito sgraffito 모두 공통적으로 긁거나 새기는 행위, 혹은 그 결과로 생겨난 흔적이나 그림을 의미한다. 반구대[3] 암각화는 말 그대로 바위를 긁어 새긴 그림이고, 라스코나 알타미라의 동굴벽화는 철분 등이 함유된 광물질을 물감처럼 사용하여 그린 그린 그림이다.

여기에서 질문2 : 바위에 긁어서 새긴 그림과 내가 앞으로 이야기할 그래피티는 과연 어떤 연관이 있는걸까? 무엇 때문에 미국 뉴욕에서 볼 수 있는 그림에 graffiti 라는 이름을 붙인 것일까?

우선 원시시대 동굴이나 바위의 그림과 지하철 차량이나 거리의 벽에 그린 그래피티의 공통점을 생각해보자. 첫번째 낙서. 알타미라의 동굴벽화에 관한 참고서적에서는 바램이나 주술의 의미를 가졌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소설[4]에서와 마찬가지로 주변인적인 청소년의 낙서일지. 기원이나 의식의 일종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것은 오늘날 그 그림을 보고 이야기하는 남일 뿐이다. 그래피티도 어느 측면에서는 이와 마찬가지로 정작 Writer 혹은 Tagger(그래피티를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에 관한 설명은 다음에 하도록 하겠다)가 어떤 의미나 의도로 그래피티를 했는지는 본인만 알 수 있을 뿐(물론 미루어 짐작하거나, 그 의도가 어느 정도 분명히 전될되기도 한다) 타인이 볼 때는 그저 지하철 차량에 그려진 낙서로 치부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교집합 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두번째 내 것이 아니다. 선사시대 암각화의 주인은 누구일까? 주인이라고 할 수 조차 없지않을까? 내 것이 아닌 곳에 그린다는 점이 그래피티와 동굴벽화의 공통점 중 하나이다. 깊은 산 중의 아무도 알 수 없는 바위에 그렸거나 골목 어느 벽에 그렸거나 모두 내 것이 아닌 곳이며 그것은 다른 한 편 누구나 자유롭게(찾기가 힘들 뿐 깊은 산 중이라고 못 가게 막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으로부터 30000년 전에는 이 점이 크게 문제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되지만(사냥하러 갈 시간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면 배가 고픈 정도이지 않을까) 현재에는 커다란 문제가 될 여지를 가지고 있다.

어쨌든 이런 저런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오늘날의 그래피티는 대략 1960년대 미국의 필라델피아와 펜실베니아에서 CORNBREADCOOL EARL 이라는 이름이 도시 이곳 저곳에 쓰여지는 형태로 처음 나타났다고 한다[5]. 이러한 초기 형태의 그래피티(아마도 Tagging 이라고 불러야 더 정확할 것이다)가 전파되어 뉴욕이나 기타 여러 곳에 나타났는지 아니면, 자생적으로 생겨났는지 알 수 없지만, 곧 얼마 지나지않아 뉴욕 맨하탄의 워싱턴 하이츠 지역에도 Tagging(벽 등에 자신의 Tag name을 쓰는 것)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1971년 뉴욕타임즈에 TAKI 183이라는 작가에 관한 기사가 실리면서 그래피티가 대중에게 알려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1] 위키디피아 graffito graffiti 의 단수형. (살짝) 긁다. 새기다.

[2] 위키디피아 sgraffito 벽 등에 장식을 위하여 긁거나 새겨서 그린 그림.

[3] 경상북도 울산시 울주군 태화강변에 위치.

[4] 이문열 들소 1979.

[5] http://www.at149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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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ffiti 자폐적이고 소심한 사람의 노출증

 

가끔, 아니 언제나 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그래피티는 내게 있어 노출증에 가까운 것이었다.

‘자폐적이고 소심한 사람의 노출증’

사람이 가진 여러 성격에 자폐성을 포함시킨다고 하면, 대개의 사람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자폐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내가 조사하고 분석할 문제는 아니겠지.

결국 내가 알 수 있는 범위를 지극히 좁혀 라는 사람 하나만을 두고 본다면(사실 이렇게 보는 것이 가장 편하다), 적어도 나는 그런 자폐성과 유아병적 소심함을 가지고 있고, 그 비중이 어느 정도 상당하다고 생각된다. 이런 내가 거리에서 그림을 그리고,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는 장소에 내 그림을 드러내놓는 것은 아무래도 노출증에 가깝지 않을까……

내 성격에 대해 변명하듯 늘어놓는 것은 여기서 그만두겠다. 사실 이 글이 자기소개서는 분명 아닐 테니까.

어쨌든 내가 가진 그래피티에 대한 가치관(이런 것을 가치관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조차 의문이지만, 내가 그래피티를 판단하는 기준쯤으로 생각해주기 바란다)으로 보면 그래피티가 언제 시작되었고, 어느 때 우리나라에 들어왔는지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래피티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과 목적에 의해 이루어지는 행위라고 생각하고, 이와 유사한 시도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음을 거의 누구나 알고 있으니까. 게다가 사람의 역사를 말하지 않더라도 태어나서 손에 쥔 것은 무조건 입에 넣어 맛을 보는 시기를 지나면, 크레파스로 아무 곳이나 가리지 않고 멋진 그림을 그려대는 것은 그렇게 낯선 일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중요도가 떨어진다고 해서 전혀 논의할 가치조차 없느냐 하는 문제로 들어가면 그것은 더더욱 아닐 거라고 생각하므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쯤으로 생각해주면 된다.

 

1960년대 후반 70년대 초 미국에서 현재와 비슷한 의미의 그래피티가 발생하여, 문화의 다른 영역들과 마찬가지로 대중매체를 통해 거의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었고(물론, 대중문화라는 것 또한 다른 문화적 확산과 마찬가지로 복합적인 요인으로 각기 다른 과정을 통해 전파ㆍ확산 되었겠지만, 그 중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역시 대중매체라고 보는 측면에서 말하는 것이므로 문화의 세계화니, 대중적 영향의 확대니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하자),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도 90년대 중 후반에 그래피티 초창기의 움직임이 보인다. 이 시점을 기준으로 하면 그래피티는 우리에게 선 보인지 갓 10년을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하였고, 그에 따라 다른 대중문화에도 꽤 많은 영향을 서로 주고받았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문화의 성장이 어느 정도 다양성이라는 측면으로 나타난다고 볼 때 이러한 현상은 당연한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은 문화를 지탱하는 기반이나 문화를 영위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 자발적이고도 자유롭게 문화를 누리고 참여함으로써 가능하다고 하면, 우리나라에서의 그래피티는 어쩌면 단순한 10대의 반항(새로운 형태로 등장하는 문화들은 언제나 이런 이름을 달고 나오는 법이다)이라기보다는 다양함을 추구하는 문화적 본성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발전이라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 같다. 게다가 단순히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하여 몸을 움직이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그래피티의 특성 때문에 그 가치는 더욱 크다.

하지만, 대체로 대중문화라는 것이 다양성에서 시작하여 어느 시점을 지나면 주류라는 큰 흐름이 생기고 그것이 다시 기존의 가치관과 결부되어 배타적이고 편협함을 띄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그래피티도 점차 그러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피티를 하는 각자가 자기의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그래피티를 하지 않는 일반인(이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배타적 표현이라면 할 말 없겠지만)이 보았을 때 그것이 그것인 것, 그저 다 같은 그래피티인 것처럼 되어버린다면 커다란 흐름만 있을 뿐 한 때의 시류에 지나지 않는 유행으로 전락해버릴 수도 있다.

그것은 어쩌면 그래피티를 하는 작가에게 주어진 특이한 상황과 환경(작가적 고민을 여유롭게 할 수 없는 현실상황, 끊임없는 Hall of Fame Bombing 사이의 반복적 자기모순, Fame을 얻기 위한 대중성ㆍ상업성과의 타협 등)때문이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그래피티를 하는 개개인이 다양하게 그래피티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부족해서일 수 있다. 이는 그래피티가 전체적인 문화에서 보면 다양성의 한 부분으로서 자리하는 한편, 그래피티 자체로서도 그 안에서 다양성을 지닐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그래피티를 하는 개인의 역할도 꽤나 다양해질 필요가 있다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결국 다양성을 이루는 각 문화와 그 하나하나의 문화적 다양성과 개개인의 다양성의 프랙탈이랄까.

다시 나에게로.

내게 있어 그래피티가 노출증, 게다가 자폐적이고 소심한 사람에 가까운 것이라고 하면 나는 이런 글을 쓸 필요도 없고 쓰고 싶지도 않다.

이런 내용의 글은 다른 누군가가 쓰고 싶은 때 자기가 좋아서 적으면 그만이고, 나는 말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의 그래피티보다는, 그저 내가 노출하고 싶을 때 나를 그래피티라는 형태로 꺼내 보이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시저의 것은 시저에게……

[電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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